서두른 선택이 가져온 알 수 없는 뒷맛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 반지를 끼고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조급해졌다. 딱히 누구를 만나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는데, 왠지 나만 뒤처지는 기분이 드는 건 왜였을까. 결국 등 떠밀리듯 가입했던 결혼정보회사가 떠오른다. 300만 원 정도 되는 가입비를 내고 프로필 사진을 찍고, 내가 원하는 조건을 이것저것 적어냈을 때만 해도 그게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사람을 제대로 본 건지, 아니면 그냥 내 조건에 맞는 서류상의 사람과 결혼을 준비한 건지 잘 모르겠다.
하와이의 햇살 아래서 마주한 낯선 장면
결혼정보회사에서 매칭해준 지금의 남편은 학력도, 직업도, 심지어 외모까지 내가 원하던 것들과 묘하게 잘 맞아떨어졌다. 우리는 만난 지 3개월 만에 식을 올렸다. 남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지만, 다들 ‘결혼은 타이밍’이라고 하니까 그게 정답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신혼여행지인 하와이의 그 푸른 수영장에서 본 광경은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온다. 남편이 낯선 외국인 여성과 스킨십을 하고 있던 그 장면.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이게 우리가 준비했던 그 거창한 결혼식의 대가인가 싶은 생각만 들었다.
법적 서류가 남긴 최소한의 위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혼인신고를 아직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귀국 비행기 표를 혼자 끊어 돌아오면서 멍하니 창밖을 보는데, 문득 예전에 청년미래적금이나 주택 청약 같은 걸 알아볼 때 ‘혼인신고 전 예비 배우자’란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고민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그게 참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혼인신고를 안 해둔 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되어버렸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법적으로 묶여 있지 않다는 사실 하나가 이렇게 큰 안도감을 줄 줄이야.
돈으로 맺어진 인연의 씁쓸한 결말
결혼정보회사에 낸 돈이며, 예식장에 쏟아부은 비용이며, 당장 돌려받을 수 있는 게 있을지 변호사 상담소니 뭐니 찾아보며 며칠을 보냈다. 단순히 돈을 돌려받고 말고의 문제를 떠나서, 사람을 조건으로 분류하고 그 데이터가 맞으면 결혼하는 시스템 자체가 왠지 이제는 무섭게 느껴진다. 상담을 받으러 가서도 ‘조건이 좋아서 만났다’는 말을 꺼낼 때마다 느껴지는 그 묘한 자괴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미 신뢰는 바닥이 났고, 이 사람과 앞으로 뭘 더 할 수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들
주변에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조용히 정리하는 게 맞는 건지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결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더니, 헤어지는 과정조차 이렇게 복잡할 줄은 몰랐다. 결혼정보회사 측에 연락해서 환불을 문의해도 이미 계약 사항이니 뭐니 하며 빙빙 돌리는 대답뿐이다.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너무 쉽게 결정했던 건지. 확실한 건, 다시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온다면 이번처럼 서류상으로 딱딱 들어맞는 것만 보고 고르지는 않을 것 같다. 근데 사실, 그다음이 올지도 잘 모르겠다.

계약 조건 확인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정말 공감이 되네요. 특히 환불 문의에 ‘계약 사항’이니 하면서 뻔한 대답만 하는 거 보면 답답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