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서른 넘어서 하는 소개팅은 다들 왜 이렇게 계산적인지 모르겠다

서른 중반이 넘어가니 소개팅의 결이 완전히 달라졌다

얼마 전에 지인을 통해 소개팅을 하나 받았다. 예전에는 그냥 ‘누구랑 소개팅을 한다’는 것 자체에 설레기도 하고, 옷장에 있는 옷을 뒤적거리며 뭘 입을지 고민도 참 많이 했다. 근데 이번에는 옷을 고르는 시간보다 상대방이 보내온 ‘조건’들을 확인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33살 간호사라고 들었는데, 만나기 전부터 나이 차이부터 시작해서 직업, 연봉, 심지어는 결혼을 얼마나 서두르는지까지 제3자를 통해 전달받았다. 예전처럼 ‘어떤 사람일까’라는 기대감보다는 ‘나와 조건이 맞는 사람일까’를 먼저 따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참 씁쓸하더라. 구미에 있는 꽤 유명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장소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서로의 편의보다는 효율만 따지게 되었다.

조건만 따지다 보니 대화가 겉돌기 시작했다

막상 카페에 가서 마주 앉았는데 대화의 흐름이 참 기괴했다. 커피 한 잔에 7천 원이 넘는 곳이었는데, 그 값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다. 서로 직업과 학벌, 그리고 부모님의 노후 준비까지 대화 주제가 올라오더라. 이게 소개팅인지 결혼정보회사에서 상담받는 건지 분간이 안 갔다. 그분은 1~2달 안에 결혼과 출산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나는 아직 사람 자체를 알아가는 단계가 필요한데, 상대방은 마치 이미 결정된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러 나온 사람처럼 굴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무섭기도 했다. 사람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프로젝트’의 파트너를 찾고 있는 느낌이랄까. 나는 무지 흰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나갔는데, 그분은 격식 차린 원피스 차림이었다. 옷차림에서부터 이미 온도 차이가 느껴졌다.

넷플릭스 연애 예능처럼 될 수 없는 이유

요즘 넷플릭스에서 하는 연애 예능들을 보면 참 극단적이더라. 낯선 사람과 3박 4일 동안 침대 위에서 지내면서 사랑을 확인한다는데, 현실의 소개팅은 그런 로맨틱한 실험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그런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건 현실에서 그런 사랑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30대의 소개팅은 ‘환승연애’의 애틋함이나 ‘솔로지옥’의 뜨거움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서로의 마이너스 요소가 얼마나 되는지 감점하는 방식의 게임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도 누군가와 기 싸움을 하거나 조건을 재고 있을 때마다 내가 너무 속물처럼 느껴지는데, 그렇다고 안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할 뿐이다.

생각보다 더 길어지는 기다림과 불확실한 마음

카페에서 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나. 정확히는 1시간 40분 정도였던 것 같다. 대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탔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애프터를 기약했지만, 사실 그게 정말 잘해보고 싶어서 한 약속인지 아니면 그냥 ‘기본 예의’였는지 잘 모르겠다. 주선자에게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지도 고민이다. 그냥 별로였다고 하면 예의가 아닌 것 같고, 더 만나보고 싶다고 하면 덜컥 겁부터 난다. 30대에는 다들 이렇게 사는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늦게 결혼 시장에 뛰어든 건지 잘 모르겠다. 주변 친구들은 결혼 소식을 하나둘 들려주는데, 정작 나는 소개팅 자리에서 면접을 보는 기분만 느끼고 돌아오니 말이다.

결국 내 입으로 나가는 말들이 마이너스가 되는 기분

요즘 TV에 나오는 서준영 같은 사람들의 고민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입만 열면 나에 대한 마이너스 요소들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말을 아끼게 된다.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흰색 반팔티를 골라 입고 나간 게 무색할 정도로, 우리는 서로의 조건만 훑어보다 끝났다. 다음번 소개팅도 이런 식이라면 그냥 당분간은 혼자 지내는 게 마음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딱히 결론이 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군가 나타나서 마법처럼 관계가 풀릴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를 만날 준비가 안 된 건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서 대충 씻고 누웠는데, 휴대폰 알림이 울리지 않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정상인 건지 모르겠다.

“서른 넘어서 하는 소개팅은 다들 왜 이렇게 계산적인지 모르겠다”에 대한 1개의 생각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