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인근에 있는 큰 결혼정보회사 건물에 다녀왔던 날이 생각난다. 사실 처음에는 호기심이 반이었다. 주변에서 하도 결정사가 어떻다, 등급표가 어떻다 말이 많길래 ‘정말 그렇게까지 체계적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요새는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같은 대기업 직원이 배우자 점수에서 의사보다 더 높게 평가받는다는 기사를 본 터라 세상 돌아가는 꼴이 궁금하기도 했다. 예약은 생각보다 쉬웠는데, 막상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분위기가 꽤 묵직했다.
상담실에서 들은 숫자들의 향연
상담사분은 아주 친절했지만, 동시에 아주 사무적이었다. 태블릿을 슥 돌려 보여주는데 온갖 수치와 점수가 적혀 있었다. 내가 어느 정도 등급에 속할 것 같냐고 물어보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것 같은 직원이 내 연봉과 자산 규모, 부모님 직업까지 하나하나 따져가며 ‘배우자 지수’를 계산하는 모습이 묘하게 불쾌하면서도 웃겼다. 특히 기독교 기반의 결혼정보회사나 특정 종교 우대 조건을 말할 때는 이게 사람을 만나는 건지, 보험 상품 설계를 받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한부모 가정이나 특정 상황에 대해 설명할 때도 상담사는 기계적으로 ‘데이터상으로는 이렇다’라고만 답했다.
500만 원에서 시작하는 만남의 무게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비용이었다. 대략적인 가입비가 500만 원에서 시작해서 옵션을 붙이면 끝도 없었다. 횟수제인지 기간제인지에 따라 수백만 원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이걸 계약하면 정말 내 짝을 만날 수 있는 건가 싶었다. 옆자리에서는 다른 사람이 상담받으며 ‘결혼 예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주택 비용 빼고도 억 단위가 오가는 걸 보니 갑자기 현실 감각이 사라졌다. 예전엔 테무 같은 곳에서 드레스 사서 셀프 웨딩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여기는 시작부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야 하니 그 간극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공정위 표준계약서와 그 이면의 풍경
상담 끝무렵에는 계약서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라도 환불이 되는지, 서비스가 불만족스러우면 어떻게 되는지 물었더니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공정위 표준계약서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정작 내 앞에 놓인 서류는 그보다 훨씬 복잡한 내부 규정들이 가득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인터넷 후기를 찾아보니, 실제로 중간에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어서 환불 문제로 소송까지 가는 경우가 꽤 있었다. ‘핀셋 매칭’이라며 완벽한 상대만 찾아준다고 호언장담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분쟁을 겪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결정사라는 시스템을 대하는 마음
상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강남역 퇴근길 인파가 보였다. 저 많은 사람 중 누군가는 오늘도 소개팅 앱을 켜고, 누군가는 결정사 비싼 돈을 내며 상대의 조건을 확인하겠지.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정말 원했던 게 조건 좋은 사람과의 매칭이었나, 아니면 그냥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려워진 현실 때문이었나. 명확한 답은 안 내려졌다. 상담사에게 말해주지 못한 내 솔직한 생각들이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아마 나는 다시는 그 상담실을 찾지 않을 것 같다.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고 그냥 나온 게 다행인지, 아니면 기회를 하나 놓친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