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강남 한복판에서 상담료를 내고 서류를 작성하던 날

사무실 건물 입구에서 느꼈던 묘한 이질감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 들어간 건물은 겉보기엔 정말 평범한 오피스 빌딩이었다. 입구에서 안내문을 보는데, 위층 어딘가에는 꽤 유명하다는 결혼정보회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옆에 서 계신 분들을 힐끔 봤는데, 다들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쓴 옷차림이었다. 나도 괜히 구두 굽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이 건물이 사실 예전에 다른 업종으로 시끄러웠던 곳이라는 기사를 언뜻 봤던 기억이 났지만, 막상 도착하니 그런 건 다 잊히고 그저 내가 여기에 왜 왔나 하는 멍한 기분만 남았다. 상담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건 잘 정돈된 사무실 특유의 향기였다. 사실 그 향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하며 느낀 현실적인 괴리

상담사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나의 이상형과 경제적인 상황, 그리고 직업적인 배경을 하나하나 물어보셨다. 처음에는 내 이상형에 대해 나름대로 솔직하게 말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질문이 구체화될수록 내가 알고 있던 이상형이라는 게 참 얄팍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부모님의 직업이나 집안 분위기까지 물어볼 때는 이게 사람을 만나는 건지, 아니면 기업 인수 합병을 위한 실사를 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대략 1시간 반 정도 상담이 이어졌는데, 그동안 내가 했던 대답들이 나중에 시스템에 데이터로 입력된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씁쓸해졌다. 사실 15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 하는 가입비가 적은 돈은 아니라는 걸 알고 갔지만, 눈앞에서 금액대를 들으니 내가 평소에 하던 연애의 가치와는 좀 다른 차원의 거래처럼 느껴졌다.

내가 원했던 만남과 시스템이 요구하는 조건

상담사님이 보여주신 몇몇 프로필은 정말 조건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중에서 누군가를 선택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내가 평소에 사교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대화가 잘 통하고 성격이 맞으면 그만이었는데, 여기서는 그런 ‘말랑한’ 부분보다는 일단 학력이나 연봉 같은 ‘딱딱한’ 정보가 먼저였다. 예전에 친구가 결혼정보업체 후기로 ‘기계적인 만남의 반복’이라고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비로소 실감이 났다. 상담 내내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기 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인연은 여기 시스템 안에서는 도대체 몇 점짜리 매칭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마음은 이미 좀 지쳐 있었고, 솔직히 상담이 끝나고 나서 바로 옆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느낀 미묘한 후회와 안도

결국 당일에 바로 결제를 하지는 않았다.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나오는 길에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안도감도 컸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을 켜고 내가 그동안 왜 이런 곳까지 찾아오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사실 사교모임도 나가보고 소개팅도 몇 번 해봤지만, 매번 어긋나는 인연에 지쳐서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결혼정보회사가 나쁜 건 아니지만, 내가 원하던 게 누군가의 데이터 점수였는지 아니면 누군가와의 공감이었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아마 다음에 다시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좀 더 마음이 굳건해질 수 있을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숙제

집에 와서 거울을 보는데, 오늘 상담 내내 너무 긴장했는지 어깨가 뭉쳐 있었다. 다음 달쯤 되면 다시 마음이 조급해질지도 모르겠다.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혼 소식을 전해오고, 명절 때마다 쏟아지는 질문들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 사실이다. 재결합이든 새로운 만남이든 다 사람 일이라는데, 시스템에 기대어 사람을 찾는 게 최선인지 아니면 그냥 좀 더 기다려보는 게 맞는지 답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는 것 같다. 오늘 상담 과정에서 느꼈던 그 딱딱한 분위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이걸 잊기 위해 며칠은 그냥 일상에만 집중하고 싶다.

“강남 한복판에서 상담료를 내고 서류를 작성하던 날”에 대한 3개의 생각

  1. 데이터로 입력되는 대답을 생각하니 좀 씁쓸하더라고요. 이상형에 대한 질문들이 얼마나 쉽게 바뀌는지, 그리고 그게 진짜 저의 것인지 의문이 들었어요.

    응답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