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친구들 등쌀에 밀려 강남에 있는 결혼정보회사 몇 곳을 상담받고 왔다. 사실 처음엔 그냥 가볍게 한번 들어나 보자 싶었는데, 상담실에 앉아서 서류를 작성하고 있으니까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더라. 연봉이랑 학벌 같은 걸 숫자로 적어내고 나니까 내가 무슨 시장에 나온 물건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했다. 상담해주시는 분들은 하나같이 자신감이 넘쳤다. ‘지금 이 시기에 이런 조건이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며 데이터를 나열하시는데, 그게 위로가 되는 건지 아니면 더 불안하게 만드는 건지 구분이 잘 안 가더라.
상담 과정에서 느낀 묘한 불편함
상담 시간은 보통 한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상담비 명목은 없었지만, 가입비 얘기를 들었을 때는 솔직히 좀 놀랐다. 가입비가 수백만 원 단위라는 걸 말로만 들었지 직접 상담지에서 보니까 체감이 확 달랐다. ‘이 돈을 내고서라도 만나야 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 내가 작성한 이력서가 무슨 회사에 면접 보러 가는 양식 같아서,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서 간 건데 시스템은 너무나 차갑게 조건만을 계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곳은 가입하면 1년에 5번 정도 만남이 보장된다고 했는데, 그게 효율적인 건지 아니면 기계적인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개인정보 처리와 불안한 마음
요즘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 결혼정보업체들도 개인정보 처리를 엄격하게 본다는 뉴스를 봤다. 상담받으면서 내 이름, 주민번호, 직장 정보까지 다 적어내는데 사실 좀 찝찝했다. 상담해 주시는 분은 보안이 철저하다고 했지만, 어딘가에 내 정보가 쌓여있다는 사실 자체가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예전에 모바일 청첩장 댓글 때문에 고소니 뭐니 하는 글을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요즘은 내 신상 정보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예민해지는 것 같다. 상담 끝나고 나오는데 내 정보를 입력했던 태블릿이 눈에 밟히더라.
TPO와 대화형 쇼핑 그리고 현실
최근에 쇼핑 앱에서 TPO나 격식 같은 걸 물어보면 AI가 척척 추천해 주는 세상인데, 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이렇게 아날로그하고 복잡할까 싶었다. 어차피 결혼정보회사도 결국 데이터로 매칭하는 거라면, 차라리 AI가 더 정확하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했다. 물론 사람이 해주는 매칭에는 데이터로 설명할 수 없는 ‘촉’이나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상담받는 내내 그런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등급을 나누고 조건이 맞는 사람들끼리 묶어주는, 마치 엑셀 시트 정리하듯 사람을 대하는 느낌이 강했다.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한 저녁
상담을 마치고 나와서 강남역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5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수백만 원짜리 가입비 생각을 하니까 현타가 제대로 왔다. 친구들은 다들 ‘일단 한 번 해봐라’, ‘경험 삼아 해보는 것도 좋다’라고 했지만, 막상 내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이게 최선인가 싶다. 오늘 만난 상담사는 내가 고민하는 표정을 보고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 강조했는데, 그 말이 왜 이렇게 공허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서 남은 것들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결국 오늘 상담받은 곳 중 어디를 선택할지, 아니면 아예 하지 말아야 할지 결론을 못 내렸다. 무언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였는데, 그냥 숙제만 잔뜩 가져온 기분이다. 친구는 결혼식에 가기 위해 옷을 고르는 즐거움을 찾고 있는데, 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한 전제 조건부터 따지고 있다는 게 가끔은 좀 서글프다. 오늘 들었던 상담비랑 서비스 내용이 적힌 종이를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는데, 아마 내일이면 꺼내 볼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영영 잊어버릴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한 건, 결혼정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사람을 만나는 가장 쉬운 길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마음이 제일 복잡한 길이라는 점이다.

연봉이랑 학벌 때문에 스스로를 상품처럼 느껴진다는 느낌이 저도 와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네요.
데이터를 나열하는 방식이 정말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더라고요. 개인정보까지 꼼꼼히 확인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