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마주한 낯선 분위기
주말 오후, 강남역 근처의 한 결혼정보회사 사무실을 찾았다. 사실 호기심 반, 주변 성화 반으로 다녀온 건데 입구부터가 무슨 대기업 면접장 같은 느낌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예약제로 운영되니 시간은 딱 맞춰 갔지만,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왠지 모를 긴장감이 들었다. 들어올 때 보니 이름 모를 드라마들처럼 극적인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고, 그냥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사무실 풍경이었다. 안내 데스크 직원은 친절했지만, 너무 기계적인 친절이라 오히려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물 한 잔을 건네받고 잠시 앉아 있는데, 벽에 걸린 수많은 커플들의 웨딩 사진이 괜히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상담실로 들어가기 전까지 짧은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쏟아지는 개인 정보와 등급의 현실
상담사분은 생각보다 훨씬 노련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물어보기보다는, 내가 어떤 조건인지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조금 기분이 나쁠 뻔했는데, 생각해보니 여기는 애초에 감정을 나누러 온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연봉, 직장, 부모님의 배경 같은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걸 보는데, 드라마 ‘철인왕후’에서 정략결혼을 논할 때의 그 삭막함이 떠올랐다. 그래도 ‘사랑이 있는 결혼’을 꿈꾸고 왔는데, 여기서는 그런 건 나중 문제 같았다. 대략적인 가입비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랬다. 가입비가 300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까지 넘나드는데, 이 돈을 내고 정말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사실 확신이 안 섰다. ‘스포트라이트’ 같은 화려한 만남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건 뭐 시장에 물건 내놓는 기분이었다.
선택지의 폭과 정해진 루틴
설명을 듣다 보니 횟수 제한이라는 게 있었다. 보통 5회에서 10회 정도인데, 한 번 만남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면 꽤 비싼 셈이다. 상담사는 내가 까다로운 조건만 좀 줄이면 훨씬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좋은 사람’이라는 게 결국 남들이 말하는 조건 좋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차라리 친구가 소개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게 나을까 싶다가도, 그것도 벌써 몇 년째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또 마음이 흔들린다. 작명 사이트에서 이름 풀이 보듯이 내 인생을 수치로 환산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넷플릭스를 켰는데, ‘사랑의 불시착’ 같은 말도 안 되는 운명이 나에게도 올까 싶어 괜히 헛웃음이 났다.
그냥 해볼까 싶은 마음과 남는 의문
결국 계약서를 바로 쓰지는 않았다. 일단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하고 나왔는데, 상담사분은 은근히 재촉하는 분위기였다. 지금 가입하면 무슨 혜택이 더 있다고 하는데, 그 혜택이 사실 별거 아닐 거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결혼정보 서비스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게 정말 사람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 ‘나도 노력하고 있다’는 안도감인 건지 헷갈린다. 1년 뒤, 2년 뒤의 내 모습이 지금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서 더 답답한 것 같기도 하다. 친구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만나는 게 최고라는데, 그 자연스러움이 제일 어렵다는 걸 왜 다들 모르는지. 오늘도 웨딩 사진이 가득한 그 사무실이 계속 떠올라 영 마음이 편하지 않다. 결국 다시 연락을 하게 될지, 아니면 이대로 잊어버릴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계약서를 미룬 이유도 이해가 되네요. 횟수 제한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 많던데, 저도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웨딩 사진들 보니까,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책임감마저 희미해지는 기분이어서 더 그랬나 봐요.
그 드라마처럼 극적인 사랑은 없었지만, 시장에 물건을 내놓는 기분이라는 표현이 정말 와닿네요. 제 경험으로도 상담 과정 자체가 정보 제공에 치중되어 개인적인 감정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시장 물건 내놓는 기분이라고 하셨는데, 저도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단순히 돈을 투자하는 느낌보다는, 뭔가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 상황 같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