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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비 500만 원이라는 숫자를 듣고 일단 나왔다

후불제라는 말에 솔깃해서 찾아갔던 날

친한 친구가 하도 성화여서 등 떠밀리듯 강남에 있는 한 결혼정보회사를 다녀왔다. 원래 이런 곳은 왠지 모르게 좀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내가 정말 이런 데까지 가서 사람을 만나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버티고 버텼던 건데, 결국 궁금증이 이기더라. 처음에는 상담 예약만 잡고 가서 커피나 한 잔 얻어먹고 오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상담실에 앉으니 분위기가 생각보다 더 진지해서 조금 당황했다. 담당 매니저분은 ‘후불제’ 시스템이라 초기 비용 부담이 적다고 강조했는데, 막상 구체적인 가입비와 성사비를 합쳐보니 500만 원대 중반이 훌쩍 넘어갔다. 연봉이랑 내가 바라는 조건들을 적어내고 나니, 사람을 ‘스펙’으로 분류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날 상담받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가’였다. 상담실 벽에 걸린 성공 사례들을 보는데 왠지 남의 일 같기도 하고,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과 정말 자연스러운 감정이 생길 수 있을까 싶어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다.

사람을 분류하는 기분이 들었던 상담 과정

상담 내용은 꽤나 건조했다. 어떤 분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성격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매니저는 자꾸만 키나 연봉, 직업군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말하는 ‘편한 사람’이라는 기준이 시스템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원하는 건 그냥 대화가 잘 통하고, 퇴근하고 같이 맥주 한잔할 수 있는 그런 편안한 관계인데, 이곳에서는 그런 추상적인 가치를 숫자로 환산해버리니 어이가 없었다. 상담 중에 층간소음 때문에 잠을 설친 이야기를 잠시 했는데, 매니저는 그냥 웃어넘기며 ‘결혼하면 그런 건 해결될 문제’라고 단정 지었다. 그 말이 왠지 모르게 더 크게 다가왔다. 지금 내 삶의 작은 불편함조차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만으로 해결된다고 믿는 걸까? 상담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이어졌는데, 나오면서 시계를 보니 저녁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졌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지 모르겠다.

소개팅 어플보다 더 삭막한 현실 마주하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안에서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각자의 목적지로 가고 있는데, 누군가는 사랑을 찾으러 가고, 누군가는 그냥 지쳐서 퇴근하는 거겠지. 예전에 잠깐 써봤던 중년 채팅이나 소개팅 어플은 그래도 가벼운 대화라도 오갔는데, 여긴 정말 철저하게 비즈니스 같았다. 결혼플래너가 건네준 안내 책자에는 광주 야외결혼식 사진이 예쁘게 찍혀 있었지만, 내 눈에는 그저 ‘언제까지 돈을 내면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서로 보였다. 모태솔로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까지 숙제처럼 느껴져야 하나 싶다. 예전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술자리에서 알게 되고, 천천히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그런 기회 자체가 거의 없다. 친구들은 다들 결혼해서 잘 사는데, 나만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서 혼자 맴도는 기분이다.

섣불리 결정하기엔 너무 큰 숙제

오늘 상담을 받고 온 뒤로 계속 고민이다. 가입을 할지 말지. 매니저님은 이번 달 이벤트가 있다고 며칠 내로 결정하라고 재촉했지만, 500만 원이라는 돈이 그냥 쉽게 결정할 액수도 아니고, 무엇보다 ‘내가 정말 준비가 되었나’ 하는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다. 돈을 내고 만나는 인연이라는 게 나에게는 너무 무겁다. 아마 조만간 결정은 하겠지만, 이게 정말 옳은 선택일지는 모르겠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샀는데, 그냥 이렇게 혼자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과, 누군가랑 같이 마시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충돌한다. 집에 들어와서 침대에 누웠는데 옆집에서 들려오는 TV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오늘은 그냥 잠이나 푹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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