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 상담실의 공기
결혼정보회사라는 곳을 처음 가본 건 순전히 주변의 등쌀 때문이었다. 30대 중반을 넘기니 소개팅도 뚝 끊기고, 명절 때마다 들려오는 잔소리가 지겨워져서 그냥 한번 알아나 보자는 심산으로 강남 어딘가에 있는 듀오 같은 곳을 찾았다. 사무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요했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상담사가 따뜻한 차를 내밀었는데, 그 순간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담을 받으러 온 건지, 아니면 비싼 멤버십에 가입하려고 온 건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느낌이었다. 상담비가 따로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내 조건을 입력하고 그들이 제공하는 데이터 리스트를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를 굴욕감이 조금씩 올라왔다.
등급이라는 이름의 숫자들
나를 매기는 기준이 단순히 직업과 연봉, 그리고 부모님의 재산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숫자로 치환된 내 모습은 어딘가 초라해 보였다. 가입비는 대략 몇백만 원 단위였는데, 이게 한두 번의 만남을 보장하는 건지 아니면 횟수가 정해진 건지 따져 묻는 것조차 좀 구차하게 느껴졌다. 11년 차 결혼생활을 정리하는 지인의 상담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지금 당장 눈앞의 비용을 고민하는 내 모습이 더 낯설었다. 사실 예전에 이혼 전문 상담 서비스를 알아보며 소장 작성 대행비가 33만 원이라는 말에 놀랐던 기억이 나는데, 여기는 그보다 몇 배나 더 큰 돈이 들어가는 곳이니 당연히 신중해야 했다.
만남의 피로함과 무미건조함
막상 가입을 하고 나니 첫 만남 일정을 잡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주말마다 시간을 비워야 했고, 상대방의 프로필을 미리 보고 나면 이미 만남의 결과가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것 같았다. 직접 얼굴을 보기 전부터 이미 판단이 끝난 상태로 나가는 만남이 즐거울 리가 없었다. 상대방도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 나를 보며 본인의 가입비를 계산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곤 했다. 유튜브에서 결혼 관련 콘텐츠를 보면 다들 아주 희망차게 이야기하지만, 실제 서비스 이용자들의 표정은 나처럼 다들 무미건조했다.
일상으로 돌아와 생각하는 것들
가끔은 정선군에서 다문화가족이나 결혼이민자를 위해 제과기능사 자격증 교육을 해준다는 뉴스를 볼 때가 있다. 그들은 최소한 새로운 삶의 역량을 키우며 미래를 준비하는데, 나는 돈을 내고서 타인에게 내 가치를 평가받는 시스템 속에 스스로를 가둔 게 아닌가 싶어 씁쓸했다. 누군가 내게 이곳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겠다. 만남의 기회는 확실히 늘어났지만, 그만큼 사람에 대한 기대치도 기계적으로 변해버린 것 같아서 말이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
계약 기간이 끝나갈 무렵, 여전히 나는 솔로다. 돈을 낸 만큼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내 인연이 없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담당 매니저는 가끔 안부 전화를 하며 다음 단계의 상품을 제안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웃으며 전화를 끊는다. 결혼이 정해진 코스대로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시스템 안에 들어가 보면 전혀 다른 변수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나오는 기분이다.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온다면 과연 똑같은 선택을 할까. 아마도 잘 모르겠다.

데이터 리스트를 보면서 굴욕감 느껴보셨을 때, 마치 꼼꼼한 기록처럼 제 삶도 평가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요.
계약 기간이 길어질수록,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감정 변화가 심하게 느껴지네요. 이런 시스템이 오히려 인간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차가운 차를 마시면서, 마치 상품처럼 취급받는 기분이 실제로 꽤 불편하네요.